본문 바로가기
ADHD

성인 ADHD 자가진단 하지 말고 가족들에게 물어보세요.

by 금쪽같은나 2023. 6. 1.
반응형

성인 ADHD
자가진단 하지 말고 가족들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성인 ADHD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가진단 항목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냥 보통 사람들도 다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좀 무신경하고 금방 질리는 것뿐인데.' 하지만 가족들이 보는 제 모습은 조금 달랐나 봅니다. 생각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동적 사고' 때문인데요. 깊이 생각하고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즉각적으로 판단하여 행동이나 말로 옮기게 되죠.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이번에는 저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와이프가 제 어떤 부분이 성인 ADHD 같다고 생각했는지 적어보겠습니다.


1.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저는 와이프와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와이프에게 종종 대화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을 때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와이프와 저는 드라마와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취미가 있는데요. 대화가 잘 통하는 편입니다. 단순히 '재밌었다, 아니다'와 같은 감상이 아니라 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그런데 와이프는 이런 취미 대화를 제외하고 정서를 교류하는 대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즉, 일상적 대화가 부족하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 와이프가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말하면 '이상한 일이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했을까?'라고 대꾸하는 거죠. 공감능력 부족도 부족이지만, 모든 상황을 감정과 정서의 영역보다는 논리와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ADHD는 정서적 대화를 나눌 때 상대 표정이나, 말투, 제스처 모두를 복합적으로 집중하기 매우 힘들거든요.

 

2. 관심의 편차가 굉장히 크다.

 관심을 두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의 편차가 매우 큰 편입니다. 관심 없는 일은 하지도 않고, 누군가 그 일에 대해 언급하면 거의 무시하는 편이죠. 가령 친구가 본인의 연애사나 가족사에 대해서 털어놓으면, 로봇처럼 삐걱대면서 '참, 힘들었겠네.'와 같은 리액션을 했습니다. 그나마도 사회화가 어느 정도 되어 그런 반응이었지, 예전에는 그냥 대꾸도 하지 않고 딴생각을 했어요. 또, 직장에서도 싫어하는 일은 마감 전까지 미루지만, 좋아하는 일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와이프와 인터넷으로 대학원 수업을 같이 들은 적이 있는데요. 와이프가 온라인으로 대학원 수업을 수료하는 2년 내내 한 번도 제가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못 봤다고 합니다. 항상 스마트폰을 보거나 딴짓을 하고 있었다고 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수업 시간에는 집중을 못하고, 막상 수업이 다 끝나고 따로 시간을 내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집중력 부족
집중력 부족

3.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물건을 잘 잃어버립니다. 고가의 물건들은 잘 챙기지만, 저가의 혹은 중요치 않은 물건들은 자주 잃어버리는 편이었어요. 저는 비흡연자지만 주변에 성인 ADHD를 앓고 있는 분들께서 라이터를 자주 잃어버린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라이터라는 게 비싸지 않고 작아서 간수를 하기 어렵긴 하지만, 매번 불을 빌려서 담배를 피우는 편이라면 성인 ADHD를 의심해 볼 만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시절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밖에 외출을 나갔다가 집으로 급히 돌아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일단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내가 준비해야 될 다른 일들에 집중하지 못하는 ADHD 특성이 마스크를 챙기지 못하게 만든 것 같아요. 


 아마 글을 읽고 '보통 다 저렇지 않나요?'라는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혹은 '저는 수업에 집중을 못했지만 벼락치기로 시험은 잘 봤는데요? ADHD라면 집중력이 부족하니까 공부도 못하는 것 아닌가요?'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집중력이 없으면 공부를 못하고 일도 제대로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저는 '그냥 내 성향이 그런 것이지 성인 ADHD까지는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거죠. 공부도 꽤 잘했고, 직장에서 밥 벌어먹을 정도의 능력은 되니까요. 그런데 정신과에서 ADHD 검사를 한 결과, '고지능 ADHD'라고 합니다. 집중력 부족을 지능으로 커버했다는 거예요. 허탈하죠. 의사 선생님 말로는 ADHD 치료를 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거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혹시 위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가족이 있나요? 한 번 병원에 방문해서 성인 ADHD 검사를 받아보라고 말해주세요. 더욱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