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신과에서 고지능 ADHD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보통 ADHD를 생각하면 충동적인 행동과 산만하고 정신없는 움직임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저는 그런 외적인 부분에서 산만함은 없었습니다. 대신에 내적인 산만함이 심했죠. 대화에 집중하기 어렵고 수업 시간에 전혀 공부가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께 지적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냐고요? 시험 성적이 괜찮았거든요. 중, 고등학교 때는 대체로 상위 10% 정도 선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들도 얘가 집중을 못하는구나라고 생각을 안 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ADHD임을 주변인들에게 고백하면 '너는 멀쩡해 보인다.'라는 말들을 종종 하시는 편이에요. 아마 직업적 편견도 반영된 반응이라 생각합니다. 이 밖에도 보통 사람들은 ADHD에 대한 다양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적어볼게요.
1. ADHD는 지능이 떨어진다.
저를 고지능 ADHD로 진단한 의사 선생님의 근거 중 하나는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였습니다. 웩슬러 검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IQ 테스트라고 부르는 검사와 유사한데 조금 더 체계적이죠. 거기서 제 IQ가 127 정도 나왔습니다. 검사지를 보니 상위 13% 정도의 결과라고 해요. 의사 선생님은 ADHD로 인해서 학업 성적이나 지능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지능이 낮기 때문에 ADHD가 걸리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ADHD를 처음 발견하게 된 것은 1902년 한 소아과 의사로부터였는데요 '지능은 정상적이지만, 공격적이고, 반항적이고, 규칙을 지키지 않고 감정이 과도하게 풍부하며 통제력이 없고 주의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지능은 정상적이지만'입니다. ADHD들이 지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동성과 집중력 유지의 어려움이 점차 ADHD 환자들을 무기력하고 지능을 낮아지게 만드는 것이죠.
2. ADHD는 공부를 못한다.
웩슬러 지능검사의 항목 중 '빠진 곳 찾기'라는 검사 영역이 있습니다. 제시된 그림에서 어색하거나 생략되어 있는 부분을 찾는 건데요. 예를 들자면 의자가 있는데 다리 하나가 없거나 하는 식이죠. 물론 예시이고 실제 검사는 이것보다는 세부적입니다. ADHD 환자의 경우는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래서 지능검사의 결과가 낮게 측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빠진 곳 찾기 영역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부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능이 낮게 측정되었는데 공부를 잘하는 경우도 많은 거죠. 오히려 내적산만 함 때문에 창의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는 특성상 문제의 답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엉뚱한 곳에 체크를 하거나 하는 실수들로 점수가 낮게 측정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3. ADHD는 장기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
보통 한 가지 일에 몰두하지 못하고 집중력이 없는 ADHD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맞는 말인데요. ADHD 환자 중 자신이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과도한 몰두를 통해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령 웹툰작가 '기안84'도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죠. 사실 웹툰이라는 장르가 장기적인 집중력이 없으면 매우 힘든 분야입니다. 마감기한도 있고 꾸준함이 생명이거든요. 그럼에도 성실하게 연재하여 유명한 작가가 된 것이지요. 오히려 ADHD의 내적 망상이 웹툰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발현해 주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ADHD를 진단받고 저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자료나 전공서적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고지능 ADHD라는 것은 진단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명쾌하게 소개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고지능 ADHD에 대해서 논문을 몇 개 찾아본 결과로 지능검사 결과가 110 이상인 사람들을 고지능 ADHD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정도가 다였습니다. 고지능 ADHD는 자신의 불리함을 지능으로 커버한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는데요. 이어서 어릴 때부터 치료했다면 학업 성적에도 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표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쓰면서 혹시 자녀가 ADHD 증상을 보인다면 하루라도 빠르게 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병행하셨으면 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다면 93%의 환자들이 긍정적으로 치료가 된다는 통계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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