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통 오전 10시에 약을 복용하고 콘서타18의 효과 유지시간인 12시간, 저녁 10시 무렵까지는 약의 효과를 보곤 했는데요. 어제는 깜빡하고 ADHD 약을 직장에 챙겨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생활을 했어요. 결과적으로 몇 가지 재미있는 상황이 생겨서 블로그에 기록해두고자 합니다.
1. 일의 순서가 뒤죽박죽
성인 ADHD의 가장 흔한 증상이죠. 일의 중요성을 판정하고 순서를 정하지 못하는 것이요. 딱 하루 약을 안 먹었을 뿐인데 바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하는 업무 중 한 달에 한 번은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문서와 증빙자료를 컴퓨터 상의 전산이 일치하도록 확인해야 하는 과정인데요. 그리고 누락된 서류를 작성하고 확인 받는 일이 중간 중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얼 먼저 해야할 지 갈팡질팡하느라고 꽤 오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증빙자료를 순서대로 정리하고 전산과 비교할 지, 전산을 보면서 증빙자료를 하나씩 맞춰나갈지 정하느라고요. 덕분에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사회생활하려면 약이 꼭 필요해요.
그리고 집에서도 문제가 생겼죠.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 식기 건조대에 있는 그릇을 먼저 정리해야 하는데 설거지를 먼저 시작해서 고무장갑을 뒤늦게 벗고 식기 건조대 정리를 하고, 설거지로 다시 돌아가는 등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약간만 주의를 기울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임에도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 오히려 많은 정보가 눈에 들어옴
이게 재미있는 부분이었는데요. 약을 먹은 후에는 집중력이 올라가서 그런지 주변 환경이 바뀌어도 내가 해야할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가 있고, 관련 정보만 눈에 들어왔는데요.
약효가 없는 상태에서는 여러가지 정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병원에 갔었는데, 제가 가야 할 병원은 4층에 있었어요. 약을 먹은 평소였다면 엘리베이터에서 4층을 누르고 평온하게 대기를 했을텐데.
오늘은 약을 안 먹어서 그런지 엘리베이터 4층을 누르고도 계속 각 층에 있는 각종 상호를 읽고 있더라고요.
음식점부터 시작해서 미용실 이름을 계속 눈으로 좇게 되었습니다.
글씨를 하나만 읽으려고 해도 옆에 있는 글씨가 계속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글씨 옆에 그림이나 마크가 있으면 더 눈길이 가고요.
3. 계속 딴 생각이 떠오름
약을 먹은 후 퇴근하면서는 차 안에서 간단히 노래를 듣거나 유튜브에서 경제 뉴스를 듣는 편인데요. 오늘은 유튜브를 틀어 놓고서도 머릿속으로 계속 딴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부동산 관련 뉴스를 들으면 이제 곧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집을 얼마에 내 놓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집을 수리해야겠지? 도배 장판 가격이 비쌀텐데. 예전에 인테리어 하는 업체가 어디더라. 거기 사장님이 원목으로 두꺼비집 커버를 만들어 줬었는데. 지금은 뭐하고 계실까?
이런식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운전이 힘들거나 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시간도 잘 갔어요. 근데 하나의 문제에 집중할 수는 없었습니다. 원래는 경제 관련 뉴스 정보를 얻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말이죠.
전문 용어로 인지충동성이 엄청 증가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콘서타18를 실수로 복용중지(?)하고 나니 약이 얼마나 제게 많은 영향을 주는지 알겠더라고요. 처음에 약을 먹기 시작했을 때는 대체 뭐가 바뀐거지? 갸우뚱하던 날도 있었는데, 이제는 삶에서 없으면 안되는 약이 되었습니다.
성인 ADHD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여 완치 여부라던가 꾸준히 약을 먹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약을 통해서 삶이 개선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특별한 부작용도 없고요.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내가 ADHD와 비슷한 증상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가까운 정신건강 의학과를 찾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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